뿌에블라, 과나후아또, 레온, 산미겔

과나후아또 Guanajuato

몬테 왕언니 2009. 11. 13. 13:10

 

아래 글은 퍼온 글입니다. 너무 잘 표현했길래 업어왔어요. ^^

 

정영의 길 위에서 만난 쉼표]

 

가도 가도 선인장뿐이다.

멕시코시티 Mexico City 에서 다섯 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과나후아또 Guanajuato 로 가는 길은 황폐하기 그지 없는데, 그 척박한 땅에서 무섭게도 자라는 것은 집채만 한 선인장뿐이다.
물기 하나 없는 메마른 땅에서 붉은 꽃과 열매 (뚜나 Tuna) 까지 매달고 서 있는 선인장은 신기하다 못해 마치 괴물 같다.
그러나 가시를 내밀면서까지도 그렇게 꿋꿋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싶고 어쩌면 내가 그런 괴물 같지는 않은가 싶어, 부서지는 햇살에 눈이 시리다.


◇(왼쪽)파란 하늘만큼이나 파란 집. 이곳 사람들은 화분에 선인장 키우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오른쪽) 우니온 Union 정원 앞의 후아레스 극장 Teatro Juarez 은 오페라 가수 엔리오 카루소 Enrique Caruso 가 명품 극장이라 극찬한 곳이다.

 
스페인 정복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중세풍의 이 도시에 발을 들이면, 마치 사랑에 흠뻑 빠져 있을 때에나 느낄 수 있는 약간의 환각 증세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눈앞의 모든 것이 로맨틱해 보이고 심장이 덜컹거리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면서 자꾸만 실실 웃음이 새는, 그러다가 사랑하는 이의 칼에 찔린 듯 옆구리가 아픈. 그래서 가만히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가 정신 차려 보면 그곳이 어디인 줄도 모른 채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황량한 벌판 끝에 어떻게 이토록 로맨틱한 도시가 있을 수 있을까, 이곳에 사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붉고 푸르고 노란 빛깔의 집에서 어떻게 이토록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레게머리를 하고는 온몸을 흔들어대는 스물 두 살의 청년 차이 였다.

그는 거리에서 친구들과 춤을 추고 있다가 배낭을 메고 걷는 내게 물었다.

숙소 찾는 거야? 레게 좋아해?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그는 자기 집에서 머무는 게 좋겠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깨끗하고 예쁜 그 집에 묵는 동안 내가 불편했던 것은 오직 하나, 차이가 아침마다 볼 비비는 인사를 하느라 레게머리를 내 어깨에 털어대는 것뿐이었다. 

◇붉고 푸르고 노랗고, 환한 꽃 숲 같은 과나후아토의 언덕 마을에서 집배원을 만났다.

그날 아침에도 나는 차이의 레게머리에 뺨을 스치며 숙소를 나와 시장 골목을 거닐었다.

그때 본 것은 시장 길목에서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파는 여인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깎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선인장이었다.

가시가 있는 선인장 껍질을 깎아내자 연둣빛을 띤 하얀 속살이 나왔다.

그것을 손가락만 하게 잘라서 봉지에 넣어 팔고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음식재료였다.

사막에서 유일하게 사는 것이라서 독하다는 느낌이 들어 정서적으로 마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인들은 서로 손바닥 선인장 (노빨 Nopal) 을 사라고 내게 내밀었다.

선인장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해먹으며 생각했다.

사실 알고 보면 선인장은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잎을 가시로 바꿨으니 그 독한 생김새가 선인장 탓은 아니다. 얼마나 속이 독하지 못하면 제 몸에 가시를 달고 살까도 싶다.

그러자 차이의 레게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숙소는 자신의 집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일터일 뿐이라는, 돈을 벌어 시골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가 레게머리를 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차이, 너도 이 황량한 도시에서 잘 살아내고 싶은 거지? 뾰족뾰족한 머리를 하고는 네 마음의 수분을 간직하고 싶은 거지? 나쁜 것들은 다가오지도 말라고 그렇게 머리에 가시를 달고 있는 거지?

그러니 과나후아또 Guanajuato 에선 선인장을 눈으로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먹어 볼 일이다.

그러고 나면 황량한 벌판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애처로워 누구든 안아주고 싶어지니까.

서로 가시 때문에 안으면 따갑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내 옆구리에 상처가 좀 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 로맨틱한 도시는 사랑하면 할수록 아프다.

아파서 아름답다.

◇(왼쪽)시장 모퉁이에서 여인들이 선인장의 가시를 잘라내고 손가락만 하게 잘라서 판다.
◇(오른쪽)과나후아또의 골목은 미로 같아서 곧잘 길을 잃지만 그 은밀한 골목에선 사랑을 줍는다.

지하수로의 은은한 가로등 불빛

아나 Anna 와 까를로스 Carlos 는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원수 집안의 아들과 딸이었으니 두 집안의 반대에 몰래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집 사이의 골목이 너무도 좁아 2층 테라스에서 두 사람은 키스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나의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그녀를 죽여 지하실 벽에 묻었다.

그 이후로 그 골목을 지나가는 연인들은 세 번째 계단에 서서 키스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많은 여행객이 그곳에서 키스하며 사랑의 깍지를 한 번 더 꽉 껴보고 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키스의 골목 El Callejon del beso (까예혼 델 베소) ’라고 부른다.

사실 과나후아또의 골목을 걷다 보면 모든 골목이 다 키스하기에 너무도 은밀하고 아름답다.

그 골목에서 문득 튀어나온 우편배달부를 봤을 땐 시인 네루다에게 편지를 전하던 우편배달부의 사랑 고백을 들을 것만 같았고 할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나온 예쁜 여자 아이를 봤을 땐 그 소녀가 십 년쯤 후에 어느 사내와 키스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거대한 선인장뿐인 황량한 벌판을 지나자 신비롭게도 로맨틱한 과나후아또 라는 도시가 꽃처럼 피어 있었다.

그러다가 지하 수로를 발견했을 때엔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해진다.

중세엔 수로였던 곳을 현재는 자동차 도로로 쓰고 있는데, 지하에서 꿈틀대며 이어지는 미로와 같은 수로 안으로 들어가면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마음을 눅지근하게 적시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치 숨겨진 세계를 발견하는 듯한 기분이라서 발걸음도 목소리도 숨죽이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와 조용조용 과나후아또의 영화 같은 지하 수로를 걷다 보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지상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오면 그것이 꿈은 아니었나 싶다.

과나후아또의 지하와 지상은 너무도 달라서 마치 다른 도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오묘한 어우러짐은 사랑의 환각 증세를 강화시킨다.

그러니 그땐 우니온 정원 Jardin de Union 근처의 카페에 앉아 멕시코 음악을 들으며 또 다른 환각의 세계로 쓸려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환각에서 빠져나온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것은 과나후아또를 떠날 때까지 계속 심화하니까.

그러니 꽃 숲과도 같은 이 도시에선 꽃향기에 취한 사람처럼 사랑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고, 누군가와 볼 비비며 인사해도 좋을 것이고, 그러다가 선인장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려 봐도 좋을 것이고, 가시에 찔려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다 해도 선인장을 한번 꽉 껴안아 봐도 좋을 것이고, 그러다가 언덕에 올라 해가 진 과나후아또를 내려다보며 슬쩍 눈물을 흘린 대도 좋을 것이고, 그러다가 어느 작은 창이 달린 숙소로 돌아와 과나후아또의 어둠에 깊숙이 안겨 단잠을 자도 좋을 것이다.



디에고 리베라 박물관 Museo de Diego Rivera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벽화 운동을 전개한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생가를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다. 1층에는 그가 사용했던 가구들이, 2층에는 그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부인 프리다 칼로 Frida Karlo 와의 삶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