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꾼, 메리다, 유까딴반도

메리다의 한인 2

몬테 왕언니 2014. 5. 31. 09:14

1919년 3 ․ 1운동 이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해외에서 독립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된 것도 한 이유겠지만, 이때의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은 미국이었다.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는 나라였으니 이곳에 살면서 보고 배운 경험이 독립운동에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뭔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했다. 이 돈을 마련하기위해 발행 한 것이 ‘독립 공채’였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들이 많은 독립 공채를 사서 자금을 제공하였다고 하는데, 멕시코의 한인들도 ‘독립공채’를 구입해 독립 운동 자금에 보탬이되었다고 한다.(얼마나 피눈물로 만든 돈인가. 그런데 이 돈으로 미국에서 ‘조선의 왕자’처럼 행세하고 다닌 자가 이승만이었다)  

고등학교 입시가 내신성적으로 선발하는 것으로 바뀐 이후 독립 운동사를 가르칠 때는 ‘교과서’를 덮어 버렸다. 더 이상 반쪽짜리의 독립 운동을, 이승만을 독립 운동가로 기록한 책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현직 교사 시절 ‘침을 튀기며’ 설명했던 진짜 독립 운동을 했던 이들의 사진을 보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물관장인 Jenny는 자신의 조상, 특히나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자부심이 강했다.

‘멕시코 이민사’, ‘쿠바 이민사’를 기록한 책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오전 관람 시간이 지나 버렸다.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려고 펼쳐보니 바로 며칠 전에 KBS ‘한국인의 밥상’ 촬영 팀이 왔다갔었다. 진행을 하고 있는 ‘최불암’ 아저씨의 멋진 필체를 보았다.  

 

‘여기서 무슨 한국인의 밥상을? ’하면서 의아해했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위해 KBS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2013년 12월 12일 한국인의 밥상 - '해외특집' 1부 밥이 조국이다. 멕시코 에네켄의 밥상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줄거리>

1905년 1033명의 조선인들은 새 희망을 찾아 멕시코로 떠났다.

하지만 현실은 악마의 발톱보다 더 독하다는 에네켄 잎을 자르는 혹독한 중노동 뿐이었다.

그리고 108년의 단절, 후손들은 얼굴도 말도 전혀 다른 멕시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조국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밥, 김치, 고추장이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있었고, 4세대, 5세대까지도 끈질기게 한국 음식을 먹고 있었다.

에네켄과 그 후손들에게는 밥이 조국이고 김치가 뿌리였던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한국 TV의 프로그램을 방영된지 3~4시간 후면 곧바로 볼 수 있다. ‘무한도전’이나 '꽃보다 누나‘ 등등은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여기서 더 열심히 본 듯하다.  

이 글을 쓰기위해 ’한국인의 밥상‘을 봤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날은 2013년 12월 3일 이었다>

 

 

KBS가 그냥 KBS가 아니란, 최불암이 그냥 최불암이 아니란 걸걸 실감했다.  

시청률을 떠나 이러한 기획을 한 PD도 칭찬 할 만하다. 박물관장 Jenny씨가 어찌 그리 막힘 없이 생생하게 설명하나했더니 바로 며칠 전 촬영을 하면서 설명했던 내용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최불암 아저씨가 바닷가에서 혼자말을 하듯하다 갑자기 울컥하는 것을 보았다. 오랜 연기 생활로 인한 과장된 부분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진 것은 나도 그 감동을 느껴서 일꺼다. 

 

1991년 첫 해외여행을 한 이후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대우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는 걸 체험하고 있다. 지금이야 어디서든 ‘Korean'이란 걸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지만, 그게 언제 부터였던가! 내가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멕시코 애니깽 노동자 선조들의 피눈물이 바탕이 된 것이리라. 

 

아울러, 오늘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수십 만 이주노동자들의 피눈물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들의 여권을 압수하고, 임금을 체불하거나 불법 고용으로 착취하는 한국인 고용주들은 남북 전쟁 이전까지 활동하던 미국 노예상인이나 일본인 이민회사, 멕시코 아시엔다의 농장주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박물관장 Jenny로 부터 쿠바에 있는 한인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았는데, 쿠바에 갔을때는 하바나에서의 일정이 짧아 찾아가보질 못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