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몬테 왕언니 2010. 3. 24. 08:46

나이먹으면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간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거 같아요.

멕시코에 오시는 분들에게 좋은 정보도 드리고, 하루빨리 잘 정착해서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싶어 열은 블러그가 어느새 제법 세월을 채웠고 그동안 정보를 가져가신 분들이 많아서 참 보람있습니다.

한때는 파워블러그로 등록되어 하루에 천명이 넘는 방문자가 있기도 하고요.

다시 조용해져서 정규적으로 들러주는 고정독자들이 꾸준하고 종종 글을 올려주셔서 참 반갑고 온라인이지만 친구가 많아진 느낌이랍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 마치 오랜 친구처럼 말에요.

 

봄날이라 햇볕은 따사롭고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타고 코끝을 간지르고 새소리가 이쁘고 곤충류의 붕붕거리는 날개짓이 한가롭습니다.

 

오랫만에 우족을 사다가 몇시간을 고았더니 하얀국물이 참 먹음직 스럽네요.

우족이 흐늘댈때까지 푹 삶아 뼈를 발려 잘게 잘라놓고 파, 마늘, 소금, 후추넣어 한그릇 먹으니 진한 국물맛이 입안이 끈끈할 정도라 몸이 절로 튼튼해지는 느낌...^^

봉지에 나눠 넣어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국이나 찌게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화학조미료없이 천연으로 맛을 내는 거지요.

 

한국에선 직장다니고 도시생활이라 웰빙이라고 해봐야 아침은 커피 한잔이고, 소문난 음식점가서 점심먹고 저녁먹는 건데, 음식점에서 100% 천연으로 하지도 않을거고, 또 구입한 식자재가 청정이란 보장도 없어 사실 눈가리고 아웅이지요. 그런데 멕시코 살다보니 땅은 흔하고 집에서 살림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텃밭 가꾸고 농장에서 풀먹고 자란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정육점에서 고기사다가 몇시간이고 내가 요리해서 먹으니까 이거야말로 정말 천연 무공해 식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웃음이 나요.

서울사람도 아닌 한양사람인 집안에서 도시적으로 자라온 내가 어떻게 해서 지금 이 멕시코에서 이렇게 살까?

모든 걸 직접 손으로 만들고....무슨 레트로도 아닌데, 오렌지 나무에 올라가서 힘들게 오렌지를 따다가 씼어서 반 잘라 꾹꾹 눌러짜서 오렌지 쥬스를 마시고, 텃밭에 씨뿌려놓고 열심히 계란껍질, 동물의 부산물, 잔디깎은 풀등을 섞어주면서 야채를 키워 먹고, 살아있는 돼지를 골라 통채로 사서 도축하거나 아님 직접 도축을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무공해 고기를 사다먹고, 농부가 키운 야채를 아침마다 뽑아다 파는 것을 사용하면서 살다니..

한국음식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는 환경이다보니 돼지족도 해먹고 소혓바닥도 직접 요리하고 약식도 만들고 만두도 만들고 김치도 만들고 스스로도 참 대단하다 싶어요.

한국에선 김치도 얻어먹거나 사다먹어서 한번도 담가본 적이 없는데....사실 집에서 내가 음식을 한 적도 거의 없었다는 걸 새삼 기억하게 되네요.

 

멕시코생활이 참 좋아서 언제까지나 이렇게 전원적으로 평화롭게 살줄만 알았는데, 요즈음의 멕시코는 그런 내 생각을 흔들리게 합니다.

깔데론 대통령이 취임하고나서는 끊임없는 마약과의 전쟁이라 세상이 뒤숭숭했지고, 그래도 초반에는 자기들끼리의 전쟁이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면 되었고 곧 끝나겠지 하는 마음에 내생활기반을 뒤집어 놓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작년내내 사방에서 살인이 나고 애매한 시민들이 피해를 자꾸 입어서 걱정하게 하더니, 올해는 우리 동네에서도 너무 자주 일이 터져 불안해서 겁나네요.

떽대학 정문앞에서 학생 둘이 총맞아 죽었다는 소식에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자식들이, 내 자식의 친구들이 다니는 대학인데.... 저녁이면 아이들은 외출금지이고, 멕시코의 일상이던 매일밤마다의 파티도 흔적도 없고 고급 대형차나 트럭은 다들 집에 세워두고 가급적 작은차, 낡은차로만 시내로 나가는 분위기이고...

매일 뉴스에선 엄청난 양의 마약, 대마초등을 검거했다고 나오고, 국경지대 미대사관도 습격받아 6개 국경대사관 직원가족들은 전부 미국소환령이 내려졌고 직원들도 안전지대로 이사하라고 했다네요.

언제까지 이럴건지 마음이 안 편하네요.

 

한국도 그렇지만, 멕시코도 시간이 지나면 몽매할만치 까맣게 잊고 또 아무일없이 일상적으로 평온을 찾고 살아가는 것이 시민들의 삶이지만 너무 오래 가니까 아무리 모른척, 그저 집안의 정원에서 바깥일은 모르는채 살려고 해도 자꾸 보이네요. 시장보러 나가는 길에도 길을 막고 경찰이나 군인들이 검문을 하니까...물론 여자혼자 운전하는 승용차는 멀리서부터도 지나가라고 손짓을 하지만...그래도 그게 머리속에 남아 불안감을 자꾸 증폭시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국가고 싶어! 하고 쉽게 말하는데, 난 한국도 이젠 타국인듯 싶네요.

조금만 기다리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또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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