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깻잎볶음 해 먹는 이야기~

몬테 왕언니 2010. 10. 24. 06:22

한동안의 여행길에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더니 그동안 깻잎이 정말 정말 대단하게 자랐어요.

도시여자인 내가 평생 처음으로 키워본 깻잎인데, 원래 깻잎이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1년내내 먹어도 먹어도 남아돌고 아는 사람에게 아주 많이 나눠줬는데도 여전히 깻잎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어요.

깻잎줄기가 마치 나무처럼 굵어지고 키도 내키만치 커다랗고 가지가 많이 나와 한아름씩 되는 깻잎...

혹시 엄마가 알까 해서 물어보니....예전엔 들깨나무를 아궁이에 태웠다고, 크게 자란다고 하시대요.

 

씨를 많이 뿌린 것도 아니고, 특별히 거름을 한 것도 아닌데...그저 물 넉넉히 주고, 계란껍질이나 강아지 응아를 가끔 묻어주는 정도였는데 아마도 기후가 맞고 적당히 나무그늘도 져서 그랬나 봅니다.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서양에서는 Green Thumb이라고 부르는데 주변에서 저보고 다들 그린썸이라고 합니다. 뭐든 무성하게 잘 키운다고요...적당히 가꿀 뿐이라 그말 들으면 좀 무안한데...좀 신기하기는 해요. 나무토막 하나를 갖다 꽂아도 잎나오고 꽃피우고 하는 편이거든요.

깻잎도 그래서 우리집에는 마치 정글처럼 무성하다고 하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해요. ^^

 

깨송이가 영글어가는데, 너무 무거워서 쳐질 정도로 잔뜩 매달고 있길래... 저걸 다 놔두면 억개쯤의 들깨가 생길 것 같은데, 나같은 초보자가 들깨를 수확하기는 엄두가 안나길래 용감하게 생전 해본 적이 없는 깨송이 부각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보니 만드는 법이 상세히 나와 있어 별로 어렵지는 않아 보이네요.

그런데....

오전내내 깨송이를 따는데 허리 아프고 모기 물리고 햇살은 얼굴로 들고 은근히 힘들대요.

부엌에 가져와 다듬고 씼는데 또 두시간쯤 걸리고.....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수백개의 깨송이...

어쩐지 천개쯤 될 거 같아서 겁나서 세어보지 않기로 마음 먹습니다.

저걸 언제 풀묻혀서 햇볕에 말리지 싶어 좀 암담합니다.

괜히 시작했다 후회도 되네요.

집안 식구들이 깨송이 부각이 뭔지도 모르는 판이니 제대로 먹어줄지도 모르는데...ㅋㅋ

(사실은 나도 먹어본 적이 없어요...만드는 걸 본 적도 없고...어린 시절 할머니가 색색으로 찹쌀풀을 쒀서 깻잎에 발라 말리시는 모습만 봤지....실제로 깻잎부각도 먹어본 적이 없지 싶네요. ^^ )

또 찹쌀가루가 없으니 찹쌀로 죽을 끓여 갈아서 준비해야 할 생각을 하니 그것도 까마득하네요.

일단 씻어놓은 깨송이는 잘 마르라고 한 옆으로 치워놓고 보니 다듬으면서 나온 깻잎이 한바구니네요.

 

배도 고프고....깻잎도 뭔가 만들어야 하니까 얼른 볶아야지!!

 

 

 무공해 재배라 벌레도 많고, 구멍난 잎도 많아요. 다듬다보면 이름도 모르는 곤충들이 많이 깜짝 깜짝 놀란답니다. 그런데 이파리를 씼어보면 신기할정도로 깨끗해요.

 마늘 5쪽, 양파 1개를 썰어넣고 기름에 볶습니다. 양파가 거의 투명해질 정도가 되고 맛있는 냄새가 나면 그때 깻잎과 참치를 넣습니다.

 

 

 참치는 물베이스도 좋고, 오일베이스도 좋은데 반드시 물이나 오일을 빼서 참치만 넣습니다. 작은 깨송이도 같이 넣어 주면 씹히는 맛이 고소해서 더 맛있답니다.

보통 깻잎은 60장쯤 넣으라고 나오는데, 나는 그냥 푸짐하게 많이 넣었어요. ^^

너무 오래 볶으면 깻잎이 질겨지고 맛없으므로, 숨죽을만치만 볶아주면서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매콤한 맛을 좋아하면 고추를 하나 썰어넣어주면 됩니다. 할라뻬뇨 고추를 한개 썰었는데 너무 매운 것 같아서 물에 살짝 씼어 건지면서 그 매운 냄새에 엄청 기침하고 혼났어요.

마지막 단계는 한국의 볶음요리가 항상 그렇듯이 참기름과 깨를 살짝 뿌려 마무리 합니다. ^^

 

 음~~ 먹음직 스럽지요?

고추때문에 많이 매울까봐 걱정했는데 섬세한 매콤함이 살짝 날 뿐, 전체적으로 향긋한 깻잎의 향과 참치의 깊은 맛, 깨송이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서 참 맛있네요.

 

배 고팠던 김에, 한접시 듬뿍 덜어서 맛나게 먹었답니다.

멕시코식으로 식사하는 것이 습관이 된지라 밥없이 깻잎볶음 그 자체가 하나의 요리가 되는 거지요.

영양분도 골고루 들어간 거고, 맛도 좋고, 소금을 살짝 넣어서 전혀 짜지도 않고, 씹히는 맛도 참 좋았어요.

뜨겁고 진한 커피 한잔으로 디저트를 하면 이것으로 토요일 오후의 멋진 점심 끝!!!

 

내일은 깨송이 부각을 마무리하고 사진 올릴께요.

배가 부르니 만사가 다 귀찮아져서 잠시 누워 쉴려고 합니다. ^^